
좁고 냄새나는 골목을 돌아서
거인 같은 건물의 어둔 그림자 안에 들어서면
어색하게도
아니, 반갑게도
형광등처럼 밝은 하얀 작약 한 무리가 있다
나도 몰래 걸음을 멈추고
하얀 작약의 복스러운 턱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
너의 깊고 그윽한 향기는
골목의 쓰레기 냄새를 지워주고
너의 겹겹이 속 깊은 얼굴은
어둔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
냄새를 향기로
어둠을 빛으로
제자리에서
순명을 따라
묵묵하게 그리고 묵직하게
꽃을 피우는 작약 앞에서
나는 숙연해진다